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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의사

극한의 3월 os턴이 끝났다.
한 달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서 글을 쓰려고 하니, 생각보다 할만했다 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 그래도 다시 하라면 죽어도 못하겠다.

인턴은 매달 다른 과에서 수련을 받게 되는데, 수련을 시작하는 3월에 가장 힘든과로 정형외과, 응급실 등이 꼽힌다. 정형외과는 어느 곳을 가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쏟아지는 환자에 다들 지쳐있다. 우리 병원만 해도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다들 집을 가지 못하고 병원에 상주한다. 분위기가 삭막해질 수 밖에 없는게, 일에 치이다 보니 나조차도 예민해졌다. 별거 아닌 일에 기분이 상하고, 잘 웃지 않게 됐다. 원래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희미해졌다.

인턴이 하는 일은 어느 과를 가나 사실 비슷하다. 수술과를 도는 경우에는 수술방을 차리고, 병동일을 한다. 비수술과의 경우 외래실에 있거나 병동일을 한다. 병동 일에는 ABGA라는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는 동맥혈 채혈, 각종 동의서받기, 폴리(소변줄) 넣거나 빼기, 관장, 드레싱 등이 있다. 정형외과는 내과적인 문제가 없는 환자들이 많아 병동일의 가짓수는 적지만, 수술이 다른 과에 비해 워낙 많아 그 자체로 힘들다. 힘들다는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는데, 진짜 힘들다.🥲

가끔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걸 잊게 된다. 일이 늦어질수록 수면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만 하게 됐다. 동의서를 받을 때 설명하는 것도 기계적으로 하게 되고, 각종 술기를 할 때에도 감정없이 진행했다. 하기 싫다고, 꼭 해야되냐며 보채는 환자들을 보면 이해하기 보다는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나를 자책했다.

가끔은 병원을 실감했는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을 보았을 때였다. 심정지가 발생하면 원내의 인턴들이 모여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는데, 압박을 하는 순간은 얼마나 간절한지. 분명 일주일 전만 해도 멀쩡하게 나와 대화를 나눴던 환자였는데, 심정지로 눈 앞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심한 무기력감에 빠진다. 복도에 앉아있는 가족들을 보면 감히 다가갈 수 조차 없다. 코로나 시국으로 중환자실 면회도 불가능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슬픈 이별이다.

24시간 365일. 그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병원은 굴러간다. 한 달 동안 이런 저런 실수 참 많이도 했다. 늦잠자는 건 예삿일이고, 수술 내내 열심히 찍었던 사진을 다 날린 적도 몇 번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입조심이라는 걸 매일 깨닫고 있는데,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되거나, 아니면 장난처럼 한 말이 와전되는 걸 눈앞에서 보고 나니, 이제야 사회생활을 좀 배우는 구나 싶다. (사실 이미 늦었다)

입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