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소모임

유느갱 2020. 7. 27. 00:07

매일 가는 곳이 집-학교-병원 그리고 가끔 카페. 이렇게 반복되다 보니 내 삶 자체도 굉장히 무미건조해졌다. 그 안락함과 편안함이 주는 행복도 있지만, 적당한 긴장감도 필요한 법이다. 지금은 그저 눈을 뜨기에 살아가고 있다. 해야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만약 글을 쓰지 않는다면 정말 하루종일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푹 쉬고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밤에 누우면, 왜 자야하는 지 잘 모르겠다. 다음날 눈을 떠도 할 일이 없는데,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얻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왜인지 죄악처럼 느껴진다. 나는 20대고, 한시가 아까운데 이런 소중한 시간을 그냥 날릴 것인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근데 스트레스만 받고 무얼 하지 않으니 나도 참 답답하다.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 앞에 주어진 테스크가 없는 느낌이다. 자기주도적 학습, 그 능력을 알고보니 나는 기르지 못했던 것인가. 이유도 모른채 학원에 의해 강제적으로 학습을 했던 아이, 그게 바로 나였던 거다.

아무튼, 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소모임을 참석해 보았다. 그나마 관심 있는 독서 분야였다. 내가 읽는 책 말고 다른 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나간 모임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여러 명의 사람들과 각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나누는 대화는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만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친구들과는 서로 불편할 수 있는 주제를 굳이 꺼내지 않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기에, 점점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편해진다.

모임을 가서도 나는 나와 대화가 통할 것 같은 사람, 성격이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본다. 나도 아쉽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편하게 하는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하는지 알아버렸다. 인간은 본래 편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라 불편함을 감수하는 길로 되돌아 가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는 것은,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할까.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직은 남아있는 것 같다. 구김살이 없는 사람. 그런 모습의 나를 바라기 때문에.

오늘의 모임을 통해, 혼자 있으면 검색해볼 일이 전혀 없는 ‘선험적’ 이라는 표현, ‘칸트’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오늘도 또 하나를 배웠다. 책을 읽는 것과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기회가 있으면 또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