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
미뤄두었던 시험 채점을 이제야 했다.
필기 시험은 이틀에 걸쳐 치뤄야하는데, 첫날 시험 정답이 첫날 마침과 동시에 공개되었지만 다음날에 영향이 갈까봐 하지 못했다. 사실 겁이 났다. 컨디션 난조라는 핑계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건 뻔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다음날로 미뤘지만 둘째날 시험이 끝난 후에도 도저히 채점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뼈아픈 실책들을 직면하기에는 너무 나약했다.
야구 경기를 보다보면 실책 하나에도 경기의 판도가 바뀌는 날이 꽤 많다. 심지어 볼넷 하나로 선수가 출루하는 순간 역전 적시타, 역전 홈런으로 이어질 수 있고, 모든 스포츠라는게 흐름이 있다보니 넘어간 분위기가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오심으로 볼넷이 만들어지거나, 주루 상에 주자가 생기는 때면 더 화가 나는게 그런 이유다. 아무튼 오심 이야기는 하다보면 끝이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큰 경기에서 실책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특히 이번 한국시리즈가 그랬다. 다리 사이로 공이 스르륵 굴러가지를 않나, 다 잡은 공을 놓치지를 않나, 심지어 장외로 공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요즘 보고 있는 배구 경기도 보면 1점이 중요한 상황이고 매치 포인트를 앞두고 있는데 꼭 서브 미스가 나온다. 네트에 가로막혀 넘어가지 못하는 공을 보고 있으면 매일 하는데 왜 그럴까 싶다. 물론 나는 하릴없이 그저 TV로 경기를 보는 방구석 여포에 불과하지만, 안타깝고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큰 경기일수록, 집중력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몸에 긴장이 들어간다. 공은 참 예민해서, 몸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원래의 궤도를 잃게 된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는데 사실 시험을 잘 못 봤다. 체감상 저번 시험보다 어려웠는데, 늘 그렇듯 정말 불맛이 아닌 이상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성적 분포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것 저것 다 생각해보고 물음표를 던졌지만, 이미 나의 OMR은 제출이 되었고,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마음 잡고 시험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냥 늘 해왔던 것처럼, 해봐야겠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