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
실습 이틀 만에 뻗어버렸다. 오늘은 일정이 없었어서 정말로 한 게 없는데 왜 이리도 피곤한가.. 아침에 일어나 교수님 따라 회진 돌고 티칭 하나 듣고 한 것이 전부였는데.. 막 사람들이 눈치 주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눈치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아마도 조장이라는 위치가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까...ㅠㅠ 오늘 어떤 교수님이 우리에게 질문을 강요? 하면서, '실습이라는 건 스스로 찾고 공부하고 질문해야 공부가 되는 거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돼!'라고 하셨다. 기분 나쁘면 너희들도 나이 들던가 라는 말은 덤이었다. 관심을 주시는 것은 감사한데 이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참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질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어떤 수준의 어떤 부분 관련해서 질문을 해야 좋을지 항상 어렵다. 어떤 교수님은 학구적인 질문을, 어떤 교수님은 과 관련된 질문, 그리고 어떤 분들은 그냥 인생에 대한 잔소리를 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아무 말을 하기에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위치라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신경외과 선생님이 나오는데,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철인으로 나온다. 지각한 적도 없고 학생들 논문도 봐주시고, 수술도 들어가고 빈틈이 하나 없어 보이는 인물. 그 와중에 마음은 어찌나 따듯한지, 어머니를 잃게 된 환자 애기들 앞에서는 눈물 흘리며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다른 보호자에게는 위로를 한다. 이런 인물이 실존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보다 높은 교수님들을 대하는 처세술은 정말 놀라웠다. 어떤 교수가 자신의 실적을 위해 VIP 환자를 받고 경험이 많지 않은 수술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환자의 예후가 걱정되었던 채송화 교수가 그 교수를 찾아가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교수님 수술 어시스트하면서 배우고 싶습니다.' 라고 하여 결국 그 수술을 본인이 집도한다. 교수님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환자도 살릴 수 있는 방법. 내가 교수님들을 더 많이 만나고 경험하다 보면 이러한 지혜가 생기게 될까?
1년동안 실습을 돌면서 나는 수술방에 들어가기보다는 안 들어가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방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하루 종일 수술실 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햇빛을 보지 못하고 일한 다는 것이 힘들 것 같았고 또한 환자에게 내 손으로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한참 쉬다가 수술방에 들어어가니 앞으로 평생 수술방을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또 과 선택은 미궁 속으로 들어가게 되나...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조금씩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