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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너, 아니 날

유느갱 2020. 5. 9. 10:09

엊그제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룬채 하루를 보냈더니, 어제는 더 전쟁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침부터 일어나 출근을 하고, 수술을 들어갔다가 과제를 하고, 잠깐 쉬었다가 티칭을 받았다. 수술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만성 부비동염과 코 용종이 있어서 내시경부비동수술을 하는 분이었다. 만성적으로 부비동염을 앓고 있다는 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가장 전형적인 증상으로 콧물은 물론, 후비루가 있는데, 코가 뒤쪽으로 그러니까 목구멍 쪽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계속 있는 것이다. 심해지면 후각감퇴나 집중력감퇴까지 일어날 수 있어 일상생활에 다분히 영향을 주는 병이다. 약물치료로는 해결이 안되고 불편감이 심하여 수술장까지 오게 되셨을 텐데, 앞으로도 완전히 불편감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 더 편안하시길. 어제 오늘 느낀 ENT(이비인후과)는 사소하지만 큰 불편감을 주는 병을 치료하는 과라는 점이다. 냄새를 조금 못 맡는다고, 귀가 조금 덜 들린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다만 크게 불편할 뿐. 그걸 치료한다는 건 굉장한 보람이 있는 일인 것 같다. 다음주에 돌 안과도 마찬가지 일텐데, 마이너 수술과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생사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에는 크게 개입될 수 있는. 그래서 마이너과들이 인기가 많은 거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잠깐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길어졌는데, 정작 하고 싶은 던 말은 티칭에 대해서였다. 티칭은 2시부터 7시까지, 장장 5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 주제는 바로 진로 탐색이었다. 교수님은 예전부터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인데, 가운에 단추가 3개 있는 이유는 의과대학 선택, 과 선택, 그리고 이후 진로 선택(개원을 할 것인가, 교수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외 다른 길로 갈 것인가) 라고 설명하셨다. 여자 가운에는 단추가 4개 있는데 그건 결혼을 잘 하면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할많하않) 아무튼 평소에도 그런 말들을 많이 하시는 편이라 그렇게 귀담아 듣지는 않았다. 그래도 의과대학 교수 중에서는 학생에게 관심이 엄-청 많으신 몇 안 되는 분들 중 한 분이신데, 어제 하루 종일 무슨 과를 선택하고 어떤 병원을 선택하면 인생이 어떻게 된다. 라고 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철저한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이 잘 “적응”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적성보다는 적응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요즈음 고민을 통해서 겨우 과를 선택했는데, 어제 티칭을 듣고 나니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레지던트 선생님 말대로 경치도 확 트이고 풍경도 아름다운 그런 곳에서 좀 고민해야 하나 싶다. 어떻게 벌어먹고 살 것인가, 딴짓하는 의사들이 성공한다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딴짓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봐야지. 남들이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때는 놀고, 생각할 때는 또 생각하는 게 의대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계속 집중하려고 노력했더니 절로 몸이 노곤해졌다. 머릿 속으로는 아 글 써야 하는데, 나름의 챌린지였는데 이렇게,, 하면서 결국 사경을 헤맸다. 쀼의 세계도 보지 못하고... 이래가지고 인턴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지 허허 뭐, 닥치면 다 하게 되겠지? 오늘은 비도 오고, 사색하기 좋은 날씨니까 고민하는 시간 많이 가져봐야지. 일단은 좀만 더 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