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를 향한 시선이 조금씩 불편해질거야.
중요한 건, 우리가 해야할 일을 했다는 거야.
그것만 기억하면 돼.
- 드라마 ‘미생’
내부고발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내부고발을 향한 시선이 실제로 어떠한지 모르겠다.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걸 떠올리자면, 우리 과 모 선배님 일화가 있다. 우리 학과는 신입 학년이 다른 모든 학년 선배님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는데, 약 100명의 선배님들 앞에서 100명이 장기자랑도 하고, 동기사랑 나라사랑 이라면서 소주 한 병을 나눠먹기도 한다. 대체 선배들도 오그라들고 후배들은 민망한 장기자랑 같은 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꼰대같은 문화가 대를 이어(?) 줄줄이 내려왔다. 그런데! 한 선배가 그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한 학년 높다고, 엄청 분위기를 잡는 그런 자리 자체가 옳지 않다고 말한 거다. 그런데 결론은 이상했다. 그 선배가 속한 학년만 모든 자리가 취소되었다. 그리고 원인이 되었던 그 문화는 여전하다. (다행히 장기자랑은 없어졌고, 올해 신입생은 학교를 전혀 나오지 못하여......) 그 선배는 혼자서 유별나게 별 것도 아닌 일을 수면 위로 올려버린 취급을 받게 되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우연히 회사가 공장 폐수를 유출하고 있는걸 목격해버린 상고 출신 여직원 ‘이자영(고아성 분)’이 다른 동기생 정유나(배우 이솜), 심보람(배우 박혜수)와 함께 이를 해결하는 내용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인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오염사건, 그리고 모 대기업에서 실제로 상고 출신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랭했던 토익수업 두 가지 소재를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배우들의 패션이나 삐삐, 386컴퓨터 등 당대의 분위기를 잘 표현했는데, 90년대에 세상을 주무르고 다녔던 중년들에게는 향수를 부를 수 있는 영화일 것 같다.

<스포주의>
주인공 세 명의 케미가 상당하고,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해서 크게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세 명이 대화하는 신을 기대하게 되곤 했는데, 가끔씩 튀어나오는 비속어들은 어쩐지 시원하고 재밌었다. 상고 출신 여직원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대부분 여자들이 내용을 이끌어가는데, 당대의 여직원들이 어떤 차별을 당했고, 능력에도 불구하고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커피 타기, 담배 사오기, 구두 닦아놓기 등의 자질구레한 일만 해야했던 현실이 잘 표현되었다. 직장내 성희롱이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은 지금 와서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 투성이지만. 이 영화가 페미 영화니 아니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던데, 여성주의 자체를 다루려는 영화이기 보다는 당대의 차별, 억압에 대한 투쟁을 다루면서 여성이 주체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여성 서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도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너무 무겁지 않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중간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부분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후 전개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판타지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유치한 장면들의 향연은 결국 실소를 짓게 했다. 그때까지 달려온 배우들의 노력이, 이렇게 표현되어 참 아쉬웠다. 그렇다고 내가 다큐멘터리를 보러온 건 아니기에 적당한 오락의 결말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잘하고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배우들의 매력이 이보다 더 담아질 수 있을까 싶은 영화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