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뇌는 들고 다니기 어렵지 않지만, 그 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모국어로 짜여 있다. 작가는 모국어에 묶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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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망명이나 피난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마이너 언어권에 속한 작가는 모국어가 양수처럼 편안히 감싸주는 곳에 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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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쉴새없이 변하고, 언어에 민감한 이들은 시시각각 낡아가는 언어들을 금세 감별한다. 모국어의 바다를 떠나면 이런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고 언어의 신선도에 덜 민감해진다. 작가는 우렁찬 목소리보다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여행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첫 글부터 상하이로 출발했다가 비자가 없어 강제 추방을 당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 건 아니지만, 매일 밤 이렇게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소재를 갈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비로소 나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한 곳에 묶여있기 보다는 이리 저리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하고, 서울에 머물러 있는 시간조차 임시적인 거라고 느낀다고 했다. 그런 삶의 배경에는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이사를 6번이나 다닌 경험이 있었다. 그는 머물러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떠나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래서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김영하의 모든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몇 작품을 경험했는데, 모두 가장 어두운 인간의 군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쉽지가 않았다.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삶은 밋밋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한 인물들을 만들면서, 직접 그 인물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알고 싶었다.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던 작가는, “인간은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며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인간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인간관계가 그 무엇보다 힘든건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확실한 건 여행을 떠나있는 그 당시에는 생각보다 큰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그 여행을 추억하면서 그 때는 참 좋았지, 하곤 하는데, 여행의 완성은 결국 시간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