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다!
딱 일주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주일 간 글을 쓰지 않았을 뿐인데, 시간이 참 오래 지난 것만 같다. 나는 소소하게 일상을 기록한다고 생각했는데,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막상 없으니 이야기를 할 상대가 필요했나 보다. 일주일 간 조금은 외로웠다.
저번 주에는 이 작은 동네에도 코로나 때문에 난리였다. 우리 구 확진자도 아니고, 타자치구 확진자가 우리 구에 있는 작은 호프집을 다녀갔는데, 하필 그 시간에 그 호프집에 있었던 동기들이 여럿이었다. 학교가, 병원이 난리였다. 실습은 곧바로 중단되었고, 동선이 겹쳤던 친구들은 선별 진료소로 가야만 했다. 친구들도 정말 버티다가 동네에 있는 아주 작은 호프집에 가서 맥주 한 잔 한 것뿐인데, 이렇게 될 줄은 그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한 것 자체가 잘한 건 아니지만 운이 좋지는 않았다. 다행히 모든 친구들이 음성이 나와서 오늘부터 그 친구들을 제외하고 실습이 재개되었지만, 그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구도 선례가 되고 싶지는 않다. 계명대 실습생 2명이 확진되었는데, 그 뉴스 속의 인물이 우리가, 아니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거다. 이제 남은 실습은 딱 한 달이다. 그동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끝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실습이 중단되니까 곧바로 심심해졌다. 허지웅 에세이를 읽다가 영화 아가씨 관련된 글을 읽고 바로 아가씨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두운 배경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 잔인한 부분이 많을까봐 당시에 보지 못했다. 근데 허지웅이 글을 어찌나 재밌게 썼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생 버튼이 눌려져 있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는 뭐랄까.. 힘들었다.
초반에는 김태리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는데, 마치 봐서는 안되는 것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지웅은 이 영화 속의 긴 성적 묘사에서 성적 흥분을 일으킬 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영화의 어떤 작위적인 묘사보다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고, 아름다웠고,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고, 히데코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귀여워요'는 진짜 귀여웠다 😂) 그리고 숙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장면들이 잘 짜인 각본과 연출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그 몰입감과 중압감에 힘들었지만, 그 모든 힘듦을 사그라들게 할 정도로 꽉 찬 해피엔딩이었다. 히데코가 '넌 내가,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내가 꼭 그 분하고 결혼하면 좋겠어?' 라면서 마음을 다 보이고, 상처를 받아 벚나무에 매달리고, 히데코를 꼭 붙잡고 '제가 잘못했어요' 하면서 엉엉 우는 숙희를 봤을 때 그 화려한 벚나무만큼 내 마음도 커졌다. 어느 세계에서는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의 곁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더럽고 추악한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사랑 앞에서 자존심은 휴지 한 조각처럼 가볍게 나부끼지만 자존감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해진다.
허지웅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 어렵게 힘들고 얻은 걸 까먹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
맞다. 그들은 늘 소중히 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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