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와 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에 대한 어떤 식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루 중 대부분을 무언가 듣고 살고 있다. 기쁠 때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되도 않는 몸부림을 해보기도 하고, 슬플 때는 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오늘 같은 날에는.. 레닌 그라드를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하루종일 뭔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아이차람 기쁘거 날뛰었는데! 하루를 기쁘게 마무리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또 시련과 당혹감이 폭풍처럼 몰려들어오는!!! 그냥 그런 느낌적인 느낌. 아, 갑자기 아주 옛날에 유행했던 말이 떠오른다. 느낌 아니까~
같은 음악이어도 어느 장소에 어떤 상황에 듣냐에 따라 또 느낌이 달라진다. 어제는, 음악을 위해 지어진 곳, 예술의 전당에서 오랜만에 공연을 보았다.
친구와 같이 갈만한 전시회나 공연을 찾아보던 중, 코로나로 인해서 무기한 연기 되었던 교향악 축제가 7월 28일부터 8월 10일까지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 공연은 거의 몇 년만이었는데, 한 번도 가본적이 없다는 친구를 끌고 갈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아 바로 예매했다. 바로,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이다.
딴딴딴 딴... 딴딴딴 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들긴다, 라고 베토벤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데, 모든 음악이라는 게, 알면 더 들리고, 그러면 더 재미있지 않은가. 그 외에도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여러 영화에서 삽입된 곡이라서 더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친구를 생각하는 척 나의 취향에 맞는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는 후문.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서 모든 좌석은 한 자리씩 비우고 앉아야 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나니 훨씬 집중도 잘 되어서 좋았다. 아직 학생인 나는 3층 객석에서 봐야만 했는데, 그건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모든 불이 꺼지고 무대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 설렜다. 나를 위한 공연은 아니지만, 마치 그런 느낌. 저 수많은 단원들이 한데 모여 연주를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존. F. 케네디 등 여러 유명 인사의 애도식에 쓰였던 음악으로, 슬프면서도 우울한데서 끝나지 않고 희망적인 곡이다. 점점 고조되면서 절정의 순간에 침묵. 소름. 한 단원이 현에 활이 닿는 소리가 나서 살짝 아쉬웠지만, 여운은 충분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은 나도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듣게된 곡인데, 역시 첼로는 참 매력적인 악기인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자체가 조금 난해하고 어려워서 챙겨듣는 작곡가는 아니었는데, 3악장 카덴차를 들으면서 협연자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하니 울컥할 뻔 했다. 호른과의 케미스트리가 굉장히 재밌었는데, 호른의 소리 또한 내가 애정하지 않지만 (뭐지 그냥 다 싫다는 건가) 다음에 또 생각이 날 것 같은 곡이 되었다. 역시, 직접 듣는 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지막 제5번 교향곡....!!!! 이 곡은 내가 아주 예전에 대학교 동아리로 오케스트라를 했을 때 공연을 섰던 곡이라서 뜻깊은 곡이다. 이번에 일부러 챙겨듣지 않고 공연을 보았는데, 듣는 내내 그 때의 추억들이 생각나는 바람에 여러 번 울컥했다. 아직 노트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방학 내내 시간 쏟아서 연습했던 곡이라서 몸이 기억하나 보다. 아무튼, 그 때보다는 편성 자체도 훨씬 더 컸고, 소리가 웅장해서 우리가 했던 연주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스케일이 많은 곡인데, 모든 현 파트가 같은 소리를 낼 때에는 너무 소름 끼칠 정도로 멋있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 좋은 걸 왜 그동안 잊고 살았을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한 번 봤다고, 악기를 다시 하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그 때 더 열심히 해둘걸, 꾸준히 할걸이라는 후회는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그냥 가끔씩 꺼내보는 추억상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공연을 보고, 또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 찾았다. 돈은 수단이라고 하지만, 더 앞자리에서 더 풍부한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 이 다짐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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