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시험을 접수했다.
국가고시는 실기와 필기. 둘 다 합격해야 자격증이 주어진다. 올해 실기 시험은 이미 접수를 취소했기 때문에 내년을 기약하기로 하고, 필기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시험은 이제 80일 정도 남았다. 필기 성적이 인턴 원서 접수 시에 중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한다. 또 다시 경쟁 시작. 수련 병원이 뭐라고, 또 다시 전쟁통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인턴을 해도 나의 모든 행동은 평가받고, 매 분기마다 성적이 나온다. 그렇게 나온 성적으로 레지던트 수련받을 과가 결정된다. 그리고 레지던트도 성적이 나오고 펠로우를 선택할 때 필요하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전문의가 배출된다. 후 생각만 해도 숨이 가쁘다.
그렇지만, 인생 무상. 계획이라고는 별로하지 않는 나이기에 막상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추진력을 얻고 있지는 못했다. 실기 시험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아침에 눈만 뜨면 새롭게 기사가 나는 바람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도 못했다. 주변에서 ‘그래서 너네 어떻게 된대’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것대로 스트레스. 누구 하나 우리의 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또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열정으로 마음을 다잡기는 힘들었다.
어제 오늘, 로컬에 나와 계시는 선생님 두 분을 만났다. 어제는 피부과. 오늘은 산부인과 선생님이었다. 한 명은 모두가 선망하는 그 과, 한 분은 그렇게 힘들다는 바이탈 메이저과. 전혀 다른 성향, 그리고 다른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이라 신기했다. 과를 선택하면 그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건지, 아니면 결국 본인에게 어울리는 과를 가게된 것인지 늘 궁금하다. 물론 중요한 건 당신의 지금 삶이지만.
두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랜만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 복잡한 상황 가운데, 나는 내 눈앞의 일들에 밀려 그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병원, 어느 과를 가야할지 고민했어야 하는데, 역시 나는 그 상황에 닥쳐서 홧김에 결정하는 데에 도가 텄다. 이럴때면 꼭 10년 후의 나를 만나서 대체 나는 무슨 선택을 하냐고 묻고 싶다. 불 같은 열정에 순식간에 휩싸여서 선택할텐데, 그 선택이 옳은지 아닌지 알고 싶은건 욕심이겠지.
두 분 모두 선배들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전공의 파업 이후 학생들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파업을 시작했지만, 본4만이 그대로 표류하고 있다.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처음 파업의 방향성이나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당시에도 #덕분이라며 라는 어감 자체가 굉장히 거슬렸는데, 안그래도 안 좋은 여론에 불을 지핀 것은 아닐지.
근데 또 한편으로는, 정부측에서 계속 여론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 물음표다. 예전 사시존폐를 가지고 파업하고 했을 때, 나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 자세히 알아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스쿨 제도가 누구를 위한 제도인 것인지...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은 내 손에서 떠나갔다. 이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들이 남았다. 평생 의사라는 직업을 하게 될텐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지.
마지막으로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셨던 선생님들을 잊지 않아야 겠다. 나 또한 후배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