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긴 하지만, 눈을 보고 더이상 설레지 않고 교통체증이나 청소 등 현실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하면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게 낭만을 잃는 것이었나 싶긴 하지만, 어느 순간 눈을 보면 흰 색보다 도로의 먼지를 머금어 까맣게 된 눈이 떠오르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인가 싶다.
갑자기 2004년, 100년 만의 폭설이 내렸던 그 날이 떠올랐다. 국가적 재난이었다. 도로는 마비되고, 중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에서는 차들이 움직이지 못해 최대 30시간 넘게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속도로에 고립되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눈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허리까지 쌓여있어 놀랐었던 기억만 남았다. 이제와서 드는 생각인데, 같은 일이 벌어져도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이 이렇게나 다르다.
오늘 아침 눈을 떴더니 온 세상이 이미 하얗게 변한 뒤였다. 눈은 참 인기척도 없이 왔다 간다. 미끄러지면 어떡하지, 하면서 긴장하고 밖을 나왔는데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눈을 굴려가면서, 단단하게 두들기면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더 애잔하다. 아이들은 호흡기 발달이 안그래도 덜 되어서 숨 쉬기도 힘들텐데, 마스크까지 씌우면 얼마나 답답해할까, 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날이 추워졌으니 다들 집콕 생활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밖을 나가기가 무서운 요즘이다.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