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를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든다.
분명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인데,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바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고민의 가짓수가 늘어가는 것만 같을까. 하나씩 지워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있다. 근데 그 문이 바로 앞에 있지 않고 숨겨져 있다. 비밀의 문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햄릿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라는 동기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
친구가 러쉬에서 좋아하던 향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봤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일이 생겼는데 나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분명 러쉬 갈 때마다 이것 저것 다 맡아보고, 나중에 꼭 사러 와야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니, 나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없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기소개서가 문제다. 분명 나에 대해 쓰는 글인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소서가 자소설이라는 이야기가 많던데, 그것마저도 창의력 제로인 나에게는 어려운 이야기다.
혹시 몰라 예전에 썼던 자소서를 몇 개 찾아보았다. 이게 나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중학교 대학교 그리고 여기 올 때까지 꽤 여러 번 쓴 글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1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 같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과에 대한 고민이 한데 어우러지니, 대체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싶다. 뭐, 원래부터 계획이라는 걸 갖고 살진 않았는데, 그래도 잘 굴러왔다는 그 안일함이 벼랑 끝까지 나를 내몰고 있다. 그렇다고 자소서에 저는 게으릅니다. 라고 쓸 수는 없지. 어떻게든 포장해봐야지.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