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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끄악

바쁘다 바빠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룬 채 하고 싶은 일들을 먼저 해버렸더니, 시간에 허덕이면서 겨우 하고 있다. 글 쓰는 것도 결국 해야 할 일 중 하나인데,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인데 이제야 겨우 잡고 있다. 이비인후과는 왜 이렇게 과제가 많은가. 사실 많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쌓여서 나를 짓누르고 있다. 해야 함을 알고 있었는데도 참 하기가 싫었다. 과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내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니 다른 과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떨어진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후유증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렇다고, 그렇게 나한테 위로해 주고 싶다.

그래도 오늘은 ENT 수술 중 하나인 편도제거술(tonsillectomy)을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편도제거술은 이비인후과에서 가장 많이 하고, 간단한 수술 중 하나인데, 급성 편도염이 계속해서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에 영향을 주거나, 만성비폐색, 수면장애 등을 일으키는 경우 수술을 하게 된다. 이번 환자는 9살 애기였는데, 어렸을 때 수술받았던 경험이 절로 떠올랐다. 나는 마찬가지로 비교적 간단한 수술 중 하나인 사시수술을 그맘때 즈음했었는데, 당시에 혼자 수술방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무섭던지. 감기 걸리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전신마취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는데, 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서 수술이 더 두려웠다. 마취하기 싫어서 계속 울고, 결국 엄마를 호출해서 겨우 수술을 진행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애기여도 막무가내로 하기 싫다고 하면 어른들도 말리기 힘들 정도로 힘이 세다. 나도 그랬겠지. 근데 오늘 수술한 아이는 주사는 무서워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꽤 의젓하게 수술을 받았다. 많이 아플 텐데. 편도절제술이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출혈이 좀 있는 수술이라 마취에서 깨어나면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안 간다. 종이에 베여도 엄청 쓰라린데, 아무리 편도여도, 아무리 작은 장기여도 생살을 잘라내는 것 자체로도 얼마나 통증이 클까. 그래도 그 아이는 씩씩하게 잘 클 것이다. 항상 목구멍을 막던 편도가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올라갈 것이다. 그게 수술의 목적이니까. 누군가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역시 의사는 감사한 직업이다.

할 일이 아직도 쌓여있지만 오늘의 이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기에 남긴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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