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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동네한바퀴

내가 사는 동네는 참 재미있다.
이곳은 한강 가까이에 있는 동네이지만, 땅값만 비싸고 뭐가 없는 동네다. 서울에서 인서울 같지 않은 대학 순위권에 항상 드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화관을 가려면 최소 30분을 이동해야 하고, 신기하게도 주변에 고등학교가 한 개도 없다. 초등학교는 3개? 중학교는 1개인데, 다들 어디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최근에 재개발 열풍이 돌면서 이 동네도 아주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중이긴 한데, 발전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이 동네에 내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는데, 10년 후에 오면 그래도 많이 바뀌어 있겠지?

언니가 발목 염좌로 출근을 1주일 동안 안하게 되었다. 나도 이제 학교에 갈 일이 없고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데, 시간이 많다보니 언니와 이곳 저곳 동네를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얼마전까지는 이 동네도 코로나의 영향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비대면 강의가 진행되어 대학상권의 많은 음식점들은 문을 닫기도 했다. 날이 풀리면서 사람들이 점점 거리로 나왔는데, 내가 사는 집은 이 동네의 핫플레이스인 시장 한복판이라 그 변화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우리집 앞에는 여성 사우나가 하나 있는데, 이 곳은 정말 이 동네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이야기는 그 곳으로 들어가고, 모든 이야기는 그 곳으로부터 나오는 느낌이라고 할까나. 사우나 앞에 한 테이블이 있고, 항상 사장님 부부가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가만히 거기 앉아있다보면 이 동네 사람들을 전부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집에서도 그 사우나 앞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게 들리는데, 대부분 사장님 부부가 이긴다. 진짜 재밌다.

어제는 우리집 근처에서 어떤 커플인지, 부부인지 싸우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여자 팔을 잡고 자기 뺨을 때리려고 했고, 여자는 그러지마 라고 하면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 가스라이팅의 현장이었다. 남자가 잘못해놓고 여자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그런 장면. 안타까워하며 지나가는데, 그 사우나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싸우는 걸 구경하면서 이야기 중인게 아닌가! 거의 싸움을 생중계하면서.. 동네 한바퀴를 돌고 오니 경찰차 한 대가 도착해있었고, 그 커플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누군가가 싸움을 보며 신고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우나 앞을 가보니 여전히 어른들이 그 커플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었다. 그 분들 중 한 분이 신고한 걸까. 그 여자분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는데, 도망치라고.

오늘은 또 우리집 골목에 저녁8시부터 한 남자가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말이 8시지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각이었는데, 아무리 불금이라지만 왜 저녁부터 거기에서 누워서 자고 있는지.. 거참... 심지어 코까지 골면서 아주 편하게 잠을 청하고 있더라. 시장 어른분들이 가서 그 청년을 깨우려고 노력했지만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서면 위험한 세상이라고, 결국 그 청년에게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설마 아직까지도 그 곳에 있을까,, 술이 이렇게나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제발 무사귀환 하셨기를....

나는 항상 이 동네를 고일대로 고인 동네라고 표현해왔다. 상대적으로 어른들의 비율이 높은 동네이고, 고등학교가 없을 지경이니, 아이들이 살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인 것 같다. 가까운 다른 동네로 가서 공부하겠지.. 근데, 이제 이런 곳에서 햇수로 4년째 있다보니, 조금씩 정이 드는 것 같다. 너무 늦었나..ㅎㅎ 여기 계속 있게 될지, 나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있었던 이 동네를 잊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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