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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희랍어시간

한 번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 한강 <희랍어시간>

너무 오래걸렸다. <채식주의자>에 비해 충격은 훨씬 덜 했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읽는데 한참이었다. 다 읽은 지금도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 담긴 책. 나중에 다시 이 책을 들 때, 나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사람일까.

처음 책을 펼쳤을 때 한 페이지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문장을 곱씹어보면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녀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데, 두 사람의 삶을 보고 있는 것도 감정이 필요했다.

양육권을 뺏기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비난받고 끝내 말을 잃어버린 그녀.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그.

더 이상 아무도 쓰지 않아 세상에서 죽어버린 언어 "희랍어"를 배우는 그녀, 가르치는 그.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자조적인 이야기 속에서 나의 상황을 대입해버린 것 같다. 그 두사람이 만나는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들이 서로를 구원했듯, 나 또한 누군가의 구원을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단지 네가 죽었는데,
내가 가진 모든 기억이 피를 흘린다고,
급격하게 얼룩지고 있다고,
녹슬어가고 있다고,
부스러져가고 있다고 느낀다.
- p. 116

플라톤은 동굴에서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이데아로의 상승이라고 설명한다.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우리는 빛을 더 잘 볼 수 있다. 어떤 언어를 뱉을 수 없을 때 우리는 더 사유한다. 빛과 소리가 없는 곳에서 더 서로를 향할 수 있기를, 그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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