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생각보다 내향적인 사람이었구나 알게 된 건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논문 한 번 써보겠다고 데이터를 하나하나 모으던 때인데, 환자들 영상자료를 확인해야 했기에 병원 지하에 있는 휴게실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일 자체는 굉장히 지루하고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었는데, 그 와중에 휴게실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조금 힘들게 느껴졌다. 대화를 피하고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떤 노래를 들어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가 나의 시간을 함께해 주었다. 책의 구절 일부를 읽어주고, 책에 필요한 기본적인 배경지식 또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김영하의 목소리도 참 따듯했고,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한 나에게 강제로 지식을 심어주었다. 힘들었던 시간이 위로가 되는 시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작업을 끝내고 그 후로는 팟캐스트를 들을 일이 별로 없었다. 한 에피소드 당 짧게는 35분 길게는 1시간 반 정도인데, 에피소드 하나를 나눠서 듣기에는 내용이 끊기고, 그렇다고 시간을 내자니 생각보다 길었기 때문이다. 현생에 치여서 저 먼 기억속에 잊힐 때 즈음,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피소드를 듣게 되었다. 제목을 볼 때마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인지, 참을 수 없는 존재가 가볍다는 건지 헷갈렸는데, 영어 제목을 찾아보니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이더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걸까.) 생각보다 철학적인 소설이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설명하면서 소설은 시작되는데, 인생은 한 번이고, 우리는 선택을 하는 순간 그것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삶을 경험할 수도 없음을 말한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고 A 또는 B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존재는 가벼운가 무거운가. 사랑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아는 것이라곤 철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는 건데, 지금까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다가 이 팟캐스트를 우연히 듣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면, 나는 그래서 내향적인 사람인지 외향적인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힘든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가 소모되고, 집 안에 있기에는 또 답답해서 코로나19가 너무 버티기 힘들다. 그럼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지만 내향적인 사람인 건가.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참 쉽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될까? 책상에 앉아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별 생각 다한다.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