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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글의 이유

거의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렇게 쌓인 글이 어느새 285개. 뭘해도 100일 이상 넘긴 적이 별로 없었는데, 300개 가까이 된다는 것이 실감도 안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막상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날 것의 감정들을 다시 느끼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부끄러운 나날들의 기억을 되새기는 일일까봐. 훌륭한 문장은 인고 끝에 나온다고 하는데, 한 문장을 쓸 때 단 하루, 그리고 그 안에서도 길어야 한 시간을 쓰고 있다.

일기보다는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고 싶었다.
285일만에 새삼스럽게 깨달았는데, 정말 갑자기 떠올랐는데, 에세이를 매일 같이 쓰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 여러 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플롯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이지만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벤트가 있고, 그 이벤트를 통해서 과거의 이야기를 말하고, 자신이 얻게 된 생각을 전달한다. 항상 교훈있는 마무리는 아니더라도, 사회 현상이나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유의 결과물이고, 작품이었다. 나는 하루에 길어야 한 시간 가량의 시간만 쏟고서 사유를 하는 척 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여태까지 써왔던 글을 더 마주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모든 글이 꼭 기-승-전-결이 완벽해야 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벼운 글은 또 그 나름대로, 무거운 글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란다. 이건 절대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다가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라는 문장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더 많은 지식이 곧 인간에 대한 사유의 해답이 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그림자를 판 사나이부터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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