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서 오늘이 이 집에서 언니와 자는 마지막 밤이 되었다. 결혼식을 한 번 미뤄서 어쩌다보니 100일을 더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다행이라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언니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쭉 한 방에서 지냈다. 방이 2개가 있음에도 각자 방을 쓰기보다 공부방, 침대방으로 나눠서 생활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텐데, 부모님의 깊은 뜻이리라. 그런데 따지고보면 언니와는 5살 터울이라 둘이 계속 붙어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언니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 후에는 내가 기숙 학교를 다녔고, 언니는 지방에, 나도 기숙사에 있다보니, 이건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완전히 따로 사는 것도 아닌.
부모님께서 이사를 가면서 언니와 나는 이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막연하게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같이 살 수 있겠다 했는데, 그 날이 이렇게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다. 언니의 짐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 그때는 빈자리를 느끼게 될까.
나도 2달 뒤면 이 집에서 나가게 된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못했는데, 그 날이 정말 언니로부터 떠나는 날이 될 것 같다. 물리적인 독립과 심리적인 독립은 또 다르니까. 지금 있는 이 집에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게 애정이 될 줄이야.

언니는 코로나 때문에 결혼 준비 하는데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요즘에도 갑자기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바람에 매일 아침이면 긴장 속에 눈을 떴다. 마음을 조금 놓는가 했더니 본인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음주에 3단계 되면 다른 결혼식은 어떻게 되는거냐고 걱정을 하고 있다. 저렇게 정이 많아서 어떡하면 좋아.
신혼집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꾸리게 될까. 언니가 행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