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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가고시 실기는 국시원에서 랜덤으로 날짜를 정해주었다. 예년까지는 학교별로 배정된 날짜가 있었고, 학생이 실기 날짜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학교마다 배정 방식은 상이했다.) 이는 채점자가 교수이기 때문인데, 같은 학교 교수가 채점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작년에 선발대가 존재함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정성’을 위해 무작위 추첨이 이루어졌다.
이번 시험이 유난히 힘들었던 건, 내가 어쩌다 첫 날이 걸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나한테 일어난 것이다. 작년에 예정되었던 시험 날짜는 마지막에서 이틀 전이었기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 속에서 그저 최선을 다할 수 밖에. 그렇기 준비하던 기간에는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합격률 95%의 시험. 어떻게 보면 참 쉬운데, 이상하게 떨어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공부만 하고 자라온 이 요상한 놈들은 겁은 또 어찌나 많은지, 본인이 그 5% 안에 들까봐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렇게 모두가 상향 평준화를 만들어간다.
오늘은 일주일 만에 다시 학교 실습실을 방문했다. 시험을 앞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첫 시험이라는 이유로 준비 기간 내내 동기들의 안타까운 시선, 그리고 도움을 참 많이도 받았다. 받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가능한 많은 동기들을 돕고 싶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잘 하는 친구들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2주 전의 내가 생각났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 동기들은 어느새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시험 끝나고 뭐했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다할 답변을 하지 못했다. 실은 내가 시험 때 놓쳤던 거, 실수한 거 되짚어 보는 작업을 매일 하고 있어,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미안한데, 너희들의 미래가 그렇게 밝다고는 할 수가 없어. 하고 할 수는 없으니까. 오늘 하루가 참 길다.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