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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찌질한 사랑

지긋지긋한 이 놈의 눈이 또 내린다. 한 두달 새에 눈이 쌓이도록 내리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볼 때는 참 예쁜데.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면 철이 든 것이라고 하던데, 올해 철드는 사람들 아마 역대 최고로 많지 않을까 싶다.

이번 해에 특히 눈이 싫은 건, 자취방 앞 계단에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집 앞에 눈은 자기가 쓸어야 된다, 라는 표어를 참 많이도 봤는데, 이제는 나 아니면 누구도 해주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옆집 놈은 눈을 쓰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일절 나와볼 생각을 않는다. 급한 놈이 일하는 거긴 한데, 오늘은 너무 열이 받아서 눈에다가 글씨 하나 새겨두고 왔다.

그래 나 찌질하다.

사람은 누구나 다 찌질한 구석이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람을 가장 바닥 아래까지 끌고 가는 것 중에 사랑이 있는 것 같다. 어제 비포 선라이즈에 이어 오늘은 비포 선셋을 보았다.

스물 셋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 그리고 서른 둘이 되어버린 그들. 비포 선라이즈는 1995년, 비초 선셋은 2004년 개봉작으로 실제로 9년이 흐른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제시와 셀린, 각자의 스토리가 오랜 시간 흘렀지만, 둘의 재회로 그 시간은 참 무색해졌다.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스물 셋의 그 마음만큼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두 사람.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전처럼 대화를 해나가다 폭포수처럼 감정을 쏟아내는 둘을 보니, 영락없는 스물 셋의 제시와 셀린 같았다.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사람의 본질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대화가 나온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묻는 봄날은 간다의 상우가 생각난다.
비포 미드나잇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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