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병원에 있다. 분명 7시 20분에 출근했는데 나는 왜 아직도 병원에 있을까? 나는 인턴일까? 레지던트일까? 일개 학생일 뿐인데 왜 여기에 있을까? 그냥 실습을 조금 열심히 돌고 있었을 뿐인데 나에게 왜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 버렸을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나의 멘붕을 유머로 승화하는 성숙한 인간인가? 하하하하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참 좋았다. 이게 다 이렇게 힘드려고 좋았던 것일까.... 오전에 출근했는데, 정문 앞에서 코로나로 인해 간단한 문진을 진행해주시는 직원분이 나를 기억해주셨다. '오늘도 어제와 같으세요?' 라고 하시면서 설명 없이 그냥 들여보내 주셨다. (물론 체온이 높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냥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죽음이 가장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잊히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후로는 정신없이 실습 일정이 진행되었다. Brain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교수님들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회진을 돌고, 교수님께 아주 뜻깊은 티칭을 들을 수 있었다. 의식을 잃은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의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티칭이었다. 나 또한 말도 안 되지만 내년 이맘때쯤이면 "의사"이기 때문에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의식이 없는 환자가 혼자 발견되었을 때 가장 먼저, C-A-B 순서로 환자를 처치해야 한다. Circulation-Airway-Breath. 기본적으로 환자가 살아있는가 아닌가를 보는 느낌이다. 일단 환자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에 환자가 의식을 잃은 이유가 뇌 때문인지, 그 외 다른 대사성 질환에 의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신경학적 진찰이다. 의학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것처럼 환자를 크게 부르면서 눈을 뜨는지 확인하고, 동공 반사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 후로는 환자가 국소 신경학적 장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소 신경학적 장애가 있다는 것은 곧 뇌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한쪽이 반대쪽에 비해 반응이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뇌의 문제를 의심할 수 있다. 의식이 없는 환자는 내가 말하는 "환자분, 눈 떠보세요. 팔을 들어보세요" 하는 명령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강제로 통증 자극을 주어서 확인해야 한다. 통증 자극은 신경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기 때문에 통증에 반응이 있는가 없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오늘 처음으로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통증 자극을 주었는데, 생각보다 강하게 통증을 주어야 해서 놀랐다.. 그리고 내가 환자에게 아픔을 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분명 환자를 위한 행위임에도 마음이 아팠다. 마음을 잘 잡아야겠지. 나는 환자를 위해 하는 것이다. 하면서.
돈 주고도 못들을 이런 강의를 듣고 난 후 기관절개술을 하는 환자를 보았다. 기관삽관을 2주 이상 해야 하는 경우 합병증이 많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관을 절개해서 좀 더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 이만 줄여야 한다.
그 후로는 거의 바로 수술 참관을 했다. 오늘도 저번과 비슷한 수술이었는데, 두개골을 열고 다시 닫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근데 사건은 여기서 터졌다. 내가 핸드폰을 만지다가 모르고 홀드 버튼을 3번 연속 눌러버렸고 그렇게 SOS 문자가 보내졌다.... 그 사람한테...... 이전에 설정해 두었던 건데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사고를.. 쳤다.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기능이 있음은 알고 있었는데 왜 안일하게 생각했을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아직도 병원이다. 뭐지! 뭐지?! 왜 아직도 있지ㅠㅠ.... 집에 가야겠다. 오늘 할 일은 원래 내일로 미루는 거라고 했다. 내일아..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