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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일지

운수 좋은 날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웠다. 사실 어제 밤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바람에 좀 늦게 잠이 들었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첫번째 사건은 씻고 나오자 마자 터졌다. 오늘 저널 컨퍼런스가 8시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들에게 컨퍼런스 장소와 시간 확인 문자를 드려야 했다. 한 교수님께 잘 보내고 다음 교수님께 보내려고 문자 내용을 복붙하고…! 그대로 보냈다. 이름은 안 바꾼 채로보내자 마자 식겁하고 혹시나 카톡처럼 삭제가 될까 싶어 일단 삭제를 하고 문자를 다시 보냈다.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급하게 인터넷에 문자발송 취소를 검색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재확인할 뿐이었다.

 

 부서질 뻔한 멘탈을 붙잡고 병원으로 출발해서 저널 발표를 했다. 무사히 한 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하지만 발표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준비한 만큼 말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적게 준비해도 말로 잘 포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정반대다. 그럴수록 120, 150%를 준비해야 100%를 발표할 수 있을텐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정도도 정해져 있어서 늘 그대로이다. 다음부터는 진짜 스크립트라도 작성해야 하는 걸까. 근데 스크립트를 작성하는 순간 그 틀 안에 갇혀서 발표하는 장소의 분위기, 사람들의 집중도 같은 것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꺼려진다. 발표 잘하는 방법에 관련된 책이라도 읽어봐야 하는 건가. ㅜㅜ 특히 나는 발표하기 전부터 긴장하고 늘 발표하는 날마다 배가 아픈 사람이라 걱정이다. 앞에 서는 순간 얼굴부터 붉어지기 시작하고 발표가 끝날 때 즈음이면 거의 목까지 다 빨갛다. 앞으로도 발표할 일이 수두룩 빽빽한데, 그러다보면 나아질까?

 

 여차저차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 회진 시간을 기다렸다. 실습이란 하루종일 대기해야 하는 것.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잘 안오고 발표를 마친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너무 피곤해 집으로 돌아가 잠깐 쉬었다. 다시 병원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계속 안오셨다. 레지던트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여쭤보니 오전에 이미 돌았다고나는 계속 병원에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학생은 굳이 부르지 말라고 하셨단다. 요즘 코로나10 때문에 의심환자들이 음압병동에 입원하고 있는데, 격리환자를 나는 볼 수 없으니 (학생은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걸까..?) 그냥 보내주신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내가 회진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교수님이 환자분에게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면 환자의 어떤 증상이 있었고,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어떤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환자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나에게는 소중한 부분이다. 아직 나에게는 1주일의 감염내과 실습 기간이 더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감염내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아쉬운 것만 자꾸 눈에 보인다. 그래도.. 다음주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지..?!

 

 오늘처럼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면 또 일이 술술 풀리는 날도 곧.. 있을거라고 믿고 싶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일들의 연속이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런 날이 금방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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