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시험을 쳤다. 작년 12월 이후로 무언가 평가를 받는 시험은 실습할 때의 크고 작은 퀴즈를 제외하고 올해 처음 친 시험이다. 필기는 아니고 실기였지만.. 그리고 간단한 축에 속하는 시험이었지만 말이다. 오늘 시험은 CPX라고 clinical presentation examination. 모의 환자와 10분간 문진과 신체진찰을 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과 치료 그리고 교육까지 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실제환자가 아니고, 이 시험을 평가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은 가짜환자이기 때문에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아무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통과해야 하는 실기시험 중 하나이다. 오늘은 실기시험을 연습할 수 있는 교내 모의고사를 치뤘다.
오늘 시험 주제는 “냉이 많아요”,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가 키가 작아요”, “피를 토했어요”라는 항목들이었다. 항목은 총 52개 정도?가 있는 걸로 추정이 되고 있는데 (국시원이 출제하고 있고 항목들을 공개하지는 않아 확실치는 않다.) 이번에는 그 중에 4개를 해보는 것이다. 시험을 치기 2주전 쯤 12개의 항목을 랜덤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전부 다 공부를 해야 한다. 시험을 먼저 치룬 동기들이 어떤 항목이 있었는지 슬쩍 흘려주기 때문에, 뒤에 시험을 칠수록 유리하다. 실제 국시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아무튼 Pass or Fail 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내년부터는 국시가 많이 바뀌기 때문에 유급하는 사람 아무도 없이 모두가 졸업하는 게 우리 모두의 목표다.
아무튼 모의 환자를 하는 분들은 연기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인 것 같은데 (어떻게 선정되는 지는 몰라서 확실치 않다...) 나는 의사인 척 하며 연기를, 앉아계신 분들은 환자인 척 연기를 하고 있기에 상황 자체는... 사실 조금 웃기다. 나도 내가 ‘의사 노릇’ 하고 있는게 참 웃긴데,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은 보통 예를 들어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하시면, 흔히 말하는 알츠하이머 치매인지, 아니면 뇌혈관에 이상이 생겨 기억력이 떨어진 것인지, 우울증이 있어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나타난 것인지 감별진단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환자들은 내가 해야할 질문을 다 했는지, 적절하게 환자에게 감정적으로 잘 반응했는 지 평가하게 된다.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항목 중에 환자-의사 관계라는 것이 있는데, 의사가 환자에게 친절하게, 또는 프로페셔널 하게, 환자의 아픔을 공감해주며 진료를 진행했는가 그 느낌?을 평가한다. 굉장히 주관적인 요소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시험이다. 이렇게 우리는 입으로만 친절한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하면서도 좀 소름돋는데, 환자들에게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같은 말을 한다. 실제로 이런 말을 환자한테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환자여도 그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린다. 내가 내 몸 아파서 진료받으러 온건데 오느라 고생했다니... 알지만, 알면서도 1점이 소중하기에 오늘도 나는 4번 그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시험을 치고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도 내가 빠뜨린 질문들이 생각나 뒤늦게 후회도 하고, 책상도 여러번 두드렸다. 그래도 뭐, 이미 지난 시험을 어쩌겠나. 제발 한 항목도 페일하지 않았길 바라면서... 수고한 나에게 양질의 수면이라는 선물을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