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드는 것에 대하여>
내과 실습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정은 내과 컨퍼런스였다. 모든 분과에서 돌아가면서 진행되었는데,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케이스를 소개하거나,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잘은 모르지만 내과를 수련하기 위해서는 발표를 최소한 몇 번을 해야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발표를 했는데, 학생이지만 배우면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필기도 해가면서 열심히 들었다. 실습이라는 게,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배우는 것도 적은데, 찾아보면 재밌을 것들을 떠먹여 주는 느낌이라서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특이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전형적인 케이스들도 있었는데, 환자의 주증상이 뭐였으며 의심되는 질환들을 감별하기 위한 진단도구들, 그리고 진단이 내려지고 치료하는 과정까지 볼 수 있었다. 의학은 환자의 목숨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그리고 전문가들에 의해서 정해진 flow chart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모든 처치가 진행이 된다.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치료를 하는 건 쉽지 않다. (실제로도 그렇게 하면 심평원에서 보험료가 삭감이 된다.) 내과 컨퍼런스를 통해서 그 흐름을 조금씩 알아갔다.
내과컨퍼런스 마지막에는 당직 보고가 진행된다. 당직했던 선생님이 올라와서 현재 입원 환자는 몇 명이고, 전날 밤에 어떤 환자들이 왔는지 대략적인 진단명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날밤 Expire한 환자, 즉 생을 마감한 환자가 어느 과였고 사인은 무엇이었는지 말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고, 발표장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무거워진다. 그걸 들을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병이 든다. 삶과 죽음은 사실 그렇게 먼 곳이 아니라는 걸 병원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는 아이가 경련을 하면서 들어오기도 하고, 노인이 요양병원에 있다가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실려오기도 한다. 젊은 사람이 트럭에 깔려서 오는 날도 있고, 중년의 남성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장기간 입원으로 진행되는, 아니면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날도 많다. 살고 죽는 것의 문제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정말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제 건강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패혈증이 와서 중환자실로 가게 되고,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가 의식을 회복해서 일반 병실로 가기도 한다. 그 길목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환자 스스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몸이 스스로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내 몸이 더이상 병마와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모든 에너지가 0으로 수렴될 때 우리는 눈을 감는다.
늙고 병드는 것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행인 것은 우리가 웰다잉에 관심을 점점 갖고 있다는 점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다. 나도 아직 호스피스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지만,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고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도 희망적이다. 글을 쓰면서도 나는 먼 이야기라고 느끼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 만큼 어떻게 정리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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