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고통 앞에서 나약하다. 그것이 육체적인가 정신적인가는 상관없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는 생각보다 강해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고통을 직접 마주하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가볍게 말하자면 운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한 세트를 더하고, 무게를 조금 더 드는 게 뭐라고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결국에는 나에게 지고 어제보다 강한 내가 됐을거야! 하고 마는 것이다.
며칠에 걸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었다. 제목은 너무 익숙하고, 1Q84를 예전에 읽었던 탓에 낯설지 않은 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펴자마자 나의 무지함을 또 깨달았다.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접하게 된 걸까 아쉬움까지 들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인 <1984>는 1984년 전체주의가 극도화된 사회가 된 오세아니아가 배경이다. 1948년에 출간된 책인데, 뒷자리 년도를 뒤집었다. 주인공 윈스턴은 당의 명령에 따라 과거 발행되었던 기사를 고쳐 재발간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그것을 불편해하지만 24시간 당에게 감시를 받고 있는 탓에 그 신념을 숨긴다. 그러다가 자신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는 줄리아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국가는 개인의 욕구나 의심 그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데, 섹스 또한 또다른 당원을 낳는 것, 당이 존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주입한다. 그럴수록 국가에 대한 분노는 커지고, 윈스턴은 줄리아와 더 깊은 관계가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고통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랑에 빠진 자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되는 걸까. 결국 당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게 되는 윈스턴은 자신의 모든 신념을 버린다. 그리고 결국 줄리아를 배신한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 사랑하는 마음... 까지도 앗아가 버렸다.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위로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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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파라고 해서, 나 혼자만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미친 것은 아닌 것이다. 진실과 허위가 이렇게 명백한데 진실을 지키기 위해 온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한다해도 미친 것은 아니다.
(중략) 그는 안전했고 모든 일은 잘 되어가고 있었다.
" 건전한 정신은 통계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그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하고 보니 그 말에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금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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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의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경이로웠던 건 '이중사고'라는 개념이었다. 당의 명령에 의해 과거를 거짓으로 얼룩지게 만들면서도, 그것이 오직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당에 대해 그 어떤 의심도 갖지 않은 것을 이중사고라고 말한다.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겠지만, 개개인에서 봤을 때도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나 자신이 와해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결국은 고통을 없애버리는, 싹을 잘라버리는 과정인거다.
윈스턴의 선택은, 아니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모든 일들은 너무 슬프게도 현실인 것 같다. 요즘 나는 희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 모든 고통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사람같다.
오늘의 일기